서울시가 초고층 주동(主棟)을 가로로 길고 촘촘하게 배치하는 이른바 '병풍 아파트' 설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35층 높이 기준 폐지로 초고층 재건축이 가능해졌지만, 조합원 조망 확대와 도시 스카이라인·공공 시야 보호가 충돌하고 있어서다.
9월23일 서울시와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앞으로 재건축 통합심의에서 최고 층수뿐 아니라 고층 주동의 수와 연속성, 건물 폭, 동 사이 간격까지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초고층 주동이 하나의 벽처럼 이어진 설계는 조정한다는 방향은 잡혔다.
앞서 서울시는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통해 주거용 건축물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던 35층 높이기준을 폐지했다. 유연한 높이계획을 허용하려는 취지였지만,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최고층과 조망세대를 늘린 설계가 잇따라 심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조합은 한강이나 하천 조망세대가 많을수록 사업성과 자산가치를 높일 수 있다. 반면 고층 주동을 가로로 길게 배치하면 외부에서는 건물이 장벽처럼 이어져 하늘과 수변(水邊)을 향한 시야를 가릴 수 있다.

서울 목동13단지 아파트 재건축사업 조감도(안). 서울시 제공
서울 양천구 목동13단지가 대표적이다. 최고 49층 주동을 비슷한 높이로 연속 배치한 설계안을 제출했다가, 단계적 스카이라인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난 7월 서울시 통합심의에서 보완 요구를 받았다.
이번 심의 결과는 통합심의를 앞둔 압구정·여의도 등 한강변 재건축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초고층을 유지하려면 건물의 수평 길이를 줄이고, 동 사이 공간과 통경축(通景軸)을 확보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겸 서울총괄건축가는 "그동안 서울에는 35층을 넘거나 50층 이상인 초고층 아파트가 많지 않았다"며 "높이규제를 완화했을 때 생기는 문제에 대한 경험이 축적되지 않아 이를 관리할 기준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높이·형태 다양화 등 관련 심의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높이규제가 빠르게 완화되는 동안 초고층 주거단지의 시야 차폐와 개방감을 계량적으로 관리할 지표는 마련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표심용 마천루' 경계령…성냥갑 아파트 막고 조화설계 유도
서울시 '병풍아파트' 제동…무리한 초고층 설계 잇단 제지…압구정3 77층→65층으로 하향…통경축 다변화로 전략 급선회도…조합은 "심의 기준 모호" 불만…서울시 "공공성 반영한 기준 정립“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서울시 정책에 따라 크게 변화해 왔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4년 이른바 '35층 룰'을 도입했지만 오세훈 시장이 2022년 이를 폐지하면서 초고층 아파트 시대가 열렸다. 다만 초고층 시대를 맞아서도 서울시가 과거부터 '병풍 아파트'를 경계해 온 만큼, 건설사들은 건축심의 시 층수보다 통경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초고층 경쟁에서 조화설계로
2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2007년 일명 '성냥갑 아파트' 줄이기에 나서며 건축심의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하천변 아파트 디자인 차별화 항목이 획일적인 아파트를 저지하는 실질적 기준으로 작용했다. 2009년에는 '한강 공공성 회복 선언'을 통해 한강변 병풍형 아파트를 해소하고 다양한 수변 스카이라인을 조성하겠다는 원칙이 제시됐다.
오세훈 시장은 2022년 잠실 아파트들을 두고 "두부나 무를 잘라놓은 것 같다"며 높이가 똑같고 시야가 막힌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잠실 대장아파트로 꼽히는 엘스·리센츠·트리지움은 관련 기준이 도입되기 전인 2008∼2009년 준공됐다.
2022년부터 5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 건설이 가능해지면서 정비사업장 곳곳에서는 '초고층 성냥갑 아파트'들이 설계안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 건축설계사 관계자는 "설계사 수주전에서 최대한 많은 동을 초고층으로 뽑아야 사업을 따낼 수 있다는 분위기였다"며 "심의 통과가 우려되면서도 무리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수많은 사업장에서 스카이라인과 주동 배치 문제가 심의 문턱을 넘지 못하자, 설계사와 조합들이 자체적으로 층수 다변화를 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설계안 수정 시 추가 비용은 물론 사업 지연 등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도 "획일적 초고층이 아닌 조화롭고 창의적인 조화설계로 전략을 변경해 왔다"고 전했다.
■'모호' 지적에 서울시 "기준 정립 과제“
다만 최근 서울시가 목동13단지의 설계안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장에서는 기준의 모호함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조합 입장에서는 '정확히 몇 층을 낮춰야 하는지' '어떤 배치가 병풍이 아닌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심의위원 성향에 따라 결과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기준을 정립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핵심 관계자는 "심의위원회를 통해 건별로 처리되던 부분이 있어 기준을 정립해 나가야 하는 과제는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합이 당초 심의를 마친 뒤 시공사 선정을 거치며 조합원 입맛에 맞게 설계를 바꿔 가져오다 보니 이전에 요구됐던 공공성 기준들이 적절히 반영되지 못하는 현상이 반복되는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 곳곳의 정비사업에서 최고층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최고 층수는 일제히 낮아지는 추세다. 강남구 압구정3구역은 사업 초기 최고 77층을 계획했지만 70층으로, 또다시 65층으로 두 차례 하향 조정됐다.
압구정2구역은 '69층 4개동'을 '70층 2개동·60층 2개동'으로 조정해 층수를 다변화한 데 이어 최고 층수를 70층에서 65층으로 낮췄다. 압구정4구역은 당초 60층 이상이 4개동으로 예정됐지만, 69층 1개동·60층 1개동으로 축소됐다. 영등포구 여의도에서는 시범, 대교, 한양, 삼부 등의 최고 층수가 45∼59층이며 노량진은 1구역과 3구역이 최고 49층으로 들어선다
현재 서울에서 가장 높은 층수로 정비사업을 추진 중인 곳은 성동구 성수3지구다. 총 11개동 중 2개동이 72층으로 세워진다. 성수전략지구 일대는 '35층 룰'에 따라 수년간 건축심의가 지연됐지만 현재 초고층 단지 조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성수1지구는 69층, 2지구는 65층, 4지구는 64층 등 모두 60층을 넘어선다.
마천루와 같이 하늘 높이 솟는 아파트가 위압감을 준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서울의 도시 경쟁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이기 때문에 아파트도 예술적이고 상징적인 디자인으로 상품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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